좋은 일이에요. 책의 계절 가을에 전국민이 문학을 더 사랑한단 건. 릴스와 쇼츠에 눈을 뺏긴 시대에 다시금 글에 마음을 두게 해 준 그녀에게 감사해요.
고이에서 그녀를 다루는 이유는 그녀 역시 죽음, 마지막, 엔딩과 같은 것들을 위해 펜을 들었기 때문이에요. 모두가 한강을 말하는 요즘, 그녀의 마지막엔 어떤 의미들이 있는지 고이와 함께 살펴 보아요.
채식주의자 : “사실이었다. 그녀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
✍️ <채식주의자> *中* 죽음에 대한 문장
소년이 온다 :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 <소년이 온다> *中* 죽음에 대한 문장
그녀의 다른 문장들 : “길었던 하루가 끝나면 침묵할 시간이 필요하다”
✍️ <흰>, 그리고 노벨상 수상 직후의 <깃털>
그녀의 울림엔 언제나 마지막이 존재했다.
두서 없는 마무리지만 그녀의 문장들에 매듭을 지어 보려 해요. 사실 이번 수상 전까지 그녀를 잘 몰랐어요. 부끄럽지만요. 다만 이렇게 알게 되니 장례를 만드는 사람에겐 조금 더 특별히, 그리고 뭉클히 다가와요. 그녀가 써내린 많은 문장들엔 우리들의 마지막이 있으니까요. <채식주의자>에서 말하는 삶의 의미와 견딤, <소년이 온다>에서 말하는 항쟁의 시간과 떠난 후의 비운. 그리고 노벨상을 수상하고 첫 집필한 글 역시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었어요. 특히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라는 문장을 읽을 땐 모종의 전율마저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그녀의 수상과 이후의 행보를 통해 ‘마지막’을 읽는 시간들, 그리고 사유하는 순간들이 늘어나면 좋겠어요. 문학을 통해 더 잔잔히 스며드는 삶과 죽음의 이야기. <흰>에서 말한 ‘긴 하루 끝 필요한 침묵의 시간’처럼, 오늘도 바쁜 하루 속 이 여정의 끝을 생각하고, 그 끝에 희망하고픈 마지막 감정들을 잠시 생각해 봅시다.
좋은 일이에요. 책의 계절 가을에 전국민이 문학을 더 사랑한단 건. 릴스와 쇼츠에 눈을 뺏긴 시대에 다시금 글에 마음을 두게 해 준 그녀에게 감사해요. 고이에서 그녀를 다루는 이유는 그녀 역시 죽음, 마지막, 엔딩과 같은 것들을 위해 펜을 들었기 때문이에요. 모두가 한강을 말하는 요즘, 그녀의 마지막엔 어떤 의미들이 있는지 고이와 함께 살펴 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