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8일 작성
2024년 10월 28일 작성
웃는 작품 뿐이었습니다. 신기했어요. 무겁고, 슬픈 작품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오나 봐요. ‘국민 엄마’ 故김수미씨의 죽음.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 그녀는 ‘죽을 때까지 사고치며 죽는구나’하며 사람들이 웃어 주었으면 좋겠대요. 때론 욕쟁이 할머니로, 때론 반찬 만들어 주는 여배우로, 때론 시골 어느 마을 일용이 어머니로 주었던 많은 웃음들.
故김수미의 수많은 작품들
그 웃음에 감사하며 그녀의 시간들을 돌아 보고 싶었습니다. 그녀의 대표작 전원일기, 그리고 그 안의 일용엄니. 이 역을 맡을 나이가 고작 서른 하나였다고 해요. 꽃다울 나이에 일찍이 백발의 시간을 전했던 그녀. 지금 보니 몰라 볼 정도로 아름다웠네요. 아래 네 가지 클립을 통해, 그녀가 만든 웃음의 시간들을 함께 추억해 보아요.
이국적인 외모로 눈길을 끌었는데 갑자기 할머니 연기를 했대요.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해서 정말 깜짝 놀라게 해 보자’는 오기로 시작했다는 할머니 연기. 그리고 연신내 시장에 가서 하루 종일 할머니들 구경을 하며 연기 공부를 했다는 그녀. 성공적인 연기로 “사람들이 진짜 내가 환갑인 줄 알았어요, 팬들이 환갑 선물로 금반지도 보내 줬어요”라는 회고까지 하게 되었어요. 시골 장터에 가면 할머니들이 돈도 안 받고 친구처럼 나물을 갔다 주었다는 그녀. 어리지만 당찬 도전은 그녀의 연기 시작을 비범하지만 푸근하고, 이상하지만 오래 남게 해 주었습니다.
무려 조회수 157만 회. ‘수미네 반찬’을 하는 동안 간장게장, 잡채, 돼지고기 두루치기, 골뱅이 무침 등 정말 많은 음식들을 손수 손 보였는데요. 그중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건 묵은지 볶음이었어요. 셰프들의 질문에 대답도 해 주고, 패널들에게 직접 요리도 시켜 보며 그녀는 행복해 보여요. 묵은지를 맛있게 만든 후 보관팁까지 섬세히 알려 주는 그녀는 사실 거친 캐릭터가 아니었을지도. 투박하지만 다정하고, 또 따뜻한 마음의 사람이었을지도. 음식을 먹은 후 노사연씨가 ‘언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요’라며 안아 줘요. 그 안아줌은 단순 음식이 맛있어서만은 아니었을 거예요. 요리를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그녀의 진심을 느껴졌나 봐요.
<그대를 사랑합니다> 보셨나요? 주연 네 명인 이순재, 윤소정, 송재호, 그리고 김수미씨의 연기 인생을 합하면 200년이 넘는대요. 그만큼 관록있고, 또 몰입적인 노년 로맨스인데요. 이중 김수미씨는 치매 걸린 군봉의 아내, 순이로 등장해요. 남편이 일하러 나갈 때 자물쇠로 대문을 잠그거나, 혼자 있을 때 집안을 어지르고, 또 집을 나가 되돌아 오지 못하는 모습에 안쓰러움이 더해지는 캐릭터인데요. 이런 치매 연기에도 어색함 없는, 감초 역할을 더한 그녀예요. 위 영상은 집 나가 길 잃은 그녀를 겨우 찾은 남편과의 재회씬이에요. 군봉이 연거푸 더하는 ‘빨리 가자, 빨리 집에 가자’란 말이 마음에 스며요. 그녀는 이렇듯 늙었지만 낡지 않은, 노쇄해도 생생한 어떤 사랑도 말했어요.
2002년 <가문의 영광>으로 시작해 위기, 부활, 수난, 귀환, 영광 리턴즈까지. 시리즈물 중에서도 많은 회를 거듭한 그녀의 살아생전 마지막 작품 ‘가문 시리즈’. 조폭 패밀리의 일원으로 70살이 넘는 나이에 구수한 욕과 능청맞은 연기를 보여 주었어요. ‘아무리 좋은 집이 있어도 현장에 있는 게 행복하다’는 그녀는 나이의 정도, 그리고 연륜의 정도와는 별개로 연기를 사랑하는 참 배우임을 증명했는데요. 마지막 작품인 <가문의 영광 : 리턴즈> 시사회에서 그녀의 인터뷰가 재미있어요. “작품성은 없어요. 그냥 웃으러 오세요. 요즘 웃을 일이 얼마 없지 않나요. 생각 없이 오면 돼요”. 실제로 리턴즈는 평론단으로부터 ‘다시 돌아 오지 마라’는 혹평을 들었지만, 그저 적적한 일상에 웃음을 더하고 싶던 그녀의 진심, 그것이 무엇인진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영화를 하며 대사도 직접 쓴 그녀라 해요. 그런 마음으로 열연했으니 우리가 웃을 수밖에. 내뱉는 욕도 마냥 밉지 않았던 그녀가 마음 좋은 한 평생을 살았기를 바라요. 바로 위 사진은 그녀의 영정 사진이에요. 영정 사진마저 웃는 사진으로 그녀가 살아생전 직접 요청했대요. 그런 마음 때문인지 우리는 그녀를 보고 마냥 웃을 수 없네요. 그녀의 작품을 모두 본 게 아님에도 느껴지는 그리움, 그런 것들. 그런 것들이 ‘일용 엄니’였던 그녀의 한 장면을 찾아 보게 해요.
많은 웃음 주었던 그녀가 하늘에서 언제나 웃음 짓기를. 우리도 그녀의 시사회 인터뷰처럼 사는 게 답일지도요. 작품성 없어도 웃을 일 없는 일상에 웃음 한 줌 더하는 것. 이유 없는 웃음으로 피식해도 괜히 끝나고 나면 기분 좋은 것. 그녀가 남긴 웃음의 족적처럼, 우리도 오늘 하루 내 삶에, 또 다른 누군가의 삶에 이유 없는 웃음들을 남기는 시간을 살기를.